최배달은 형이 유학 중인 일본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먼저 부산에 가서 형의 약혼녀 남동생이 운영하는 제지 공장에서 일하며 몇 달간 준비했다.
당시 최배달이 일본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밀수였다.
최배달은 밀수를 준비하던 중 훗날 자신의 가라데 사범이 된 조영주를 만났다.
조령주는 중학교 때부터 조선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당시 공산운동이 활발했던 교토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공산주의만이 조선독립을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교토 대학의 공산주의 교수의 부당 해고에 대한 항의가 발생하여 교토 대학에서 출석을 이유로 퇴학당했습니다.
그는 임명관대학교에 입학한 뒤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아시아는 단결하여 언젠가 다가올 미국과의 최후의 결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동아연맹에 동조해 운동에 가담했다.
조영주는 한국에서 복싱과 역도를 배웠지만 일본을 다녀온 후 가라데를 배워 단숨에 간사이 최고의 선수가 됐다.
부산의 한 강연에서 조영주는 국민 화합을 호소했지만, 최배달은 스토리보다 늘씬한 몸매에 끌렸다.
이후 최배달은 당시 조영주의 펀치가 복싱 펀치와 달랐고 발차기가 키보다 더 높게 나왔다고 당시 모습을 전했다.
강의가 끝난 후 최배달은 조영주에게 곧 일본에 간다고 말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부산항에서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에 올랐다.
시모노세키에 상륙한 뒤 형이 있는 도쿄로 가고 싶었지만 경찰의 눈을 의식해 조영주가 머물고 있는 교토로 향했다.
동아연맹 기숙사에 살면서 조영주에게 매일 가라테를 배웠다.
몇 달 뒤 오야마택배는 조영주에게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상담했다.
교토대를 중퇴하고 임명관을 찾았던 조영주는 그 생각을 이해했다.
그러나 이미 그해 사관학교 입시는 끝났고 최배일은 중학교를 중퇴했다.
이에 야마나시현에서 항공기정비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졸업한 뒤 야마나시현 육군사관학교에 재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18세의 최배달은 야마나시 항공학교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그는 바퀴 달린 택시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때때로 그는 밤에 거리로 나가 악당과 야쿠자에게 싸움을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3년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교토에서 배운 가라테를 계속 공부하고 수련했다.
그러나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낙방하면서 군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최배달은 교토로 돌아가려 했지만 의지하던 조영주가 공안법 위반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자 동아일보 선생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섰다.
연합. 도쿄도의원 출마를 꿈꾸는 교사의 집에서 학생 생활을 하면서 포스터를 붙이고 연예를 진행하며 경호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송도관에 가서 가라데를 수련했다.
8개월 만에 첫 무대가 됐다.
그림 https://twitter.com/Leo_thunderbolt?t=0h7DlLNMCOTZsVvF5a_TnQ&s=09